비광 — 소주맛.
2026-09-05 20:58:50
비광. 세 글자로 하면 소주맛. 달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다. 한 모금 넘기면 쓰고 목이 조금 따갑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영화를 보고 나니 왜 관람평이 그렇게 극단적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요즘 대한민국의 어두운 곳을 꽤 깊숙이 건드린다. 누군가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보고 있는데, 굳이 영화관까지 와서 이것까지 봐야 하나?” 싶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내 이야기 같아서 불편할 수도 있고, 애써 외면하고 살던 모습을 다시 들여다보게 해서 껄끄러울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좋았다. 그리고 제목이 참 좋았다. 비광. 광은 광인데 어딘가 애매하다. 환하게 빛나는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비를 맞고 있고, 조금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게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세상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겉모습은 조금 낡아갈지 몰라도 그 사람이 살아오며 쌓은 무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세상이 아무리 억까해도, 어쨌든 광은 광이다. 우리 사무실도 어쩌면 비광 사무실이다. 처음 온 사람이 보면 “여기 정말 사무실 맞나?” 싶을 만큼 허름하지만, 그 안에서는 사람들이 먹고살고, 일이 돌아가고, 이런저런 문제들을 해결하며 오늘도 굴러간다. 폼이 조금 안 나도 광은 광이다. 비를 맞아도 광은 광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화려한 위스키 같은 영화라기보다, 쓰고 독하고 현실적인 소주 한 잔 같은 영화. 비광 — 소주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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